
놀랐습니다.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하다(Smarter than a smartphone)"는 삼성의 광고 카피를 보고서, 저는 당연히 윈도모바일 OS에다(삼성은 자체 스마트폰 OS가 없으니까요), 추가적인 애플리케이션을 얹은 줄 알았습니다. T옴니아처럼 말이죠.
[참고: 관련기사]
삼성 전략폰 `제트`…글로벌 첨단폰 출시 50개국 동시 공략 나서
수많은 언론들이 삼성의 보도자료를 받아서 그대로 홍보 기사를 뿌리기 바쁘더군요. 일부러 찾아보지 않아도 정말 많은 기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50여 개국에서 동시 출시하는 전략 폰이고 또한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하다고 하니, 전 당연히 "기본적으로는 스마트폰이고 거기에다 몇 개 기능을 더 추가하여 좀 과하게 광고를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스마트폰에다 몇 개 기능 추가하여 좀 과하게 광고를 하는구나"라는 제 생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제트는 스마트폰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네, 그렇습니다. 제트는 스마트폰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당연히 태생적으로 스마트폰보다 더 스마트할 수 없는 폰입니다.
스마트폰이 왜 기존의 일반폰과 구분되고 폰 앞에 '스마트'라는 말이 붙어 있는 걸까요? 스마트폰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습니다만, 스마트폰이 일반폰과 구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가 간편하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사용할 수 있다"입니다. 바로 이 특징 때문에 PC처럼 기능의 무한한 확장성을 가지며, 그로 인해 '스마트'하다는 호칭이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주요 스마트폰인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윈도모바일폰, 심비안폰 등을 보면 이와 같은 특징을 모두 충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제트는 사용자가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사용할 수 없는 일반폰입니다. 즉 제조사가 제공해준 기능만 사용 가능합니다. 제트는 스마트폰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특징조차 충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기본조차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비교 자체가 불가합니다. 그러므로 "스마트폰보다 스마트하다"는 삼성의 주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아, 버그는 또 얼마나 많을까요?)
익스체인지와 싱크되고 푸시 이메일 된다고 해서 스마트폰 아닙니다. CPU가 빠르고 메모리 용량이 크다고 해서 스마트폰 아닙니다. 액정이 좋고 해상도가 높다고 해서 스마트폰 아닙니다. 동영상 재생이 잘 된다고 해서 스마트폰 아닙니다.
스마트폰은 범용 운영체제를 사용함으로써, 개발자들이 손쉽게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고, 이용자들은 간편하게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수 있는, 그런 환경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스마트폰에서는 이통사, 제조사가 아니라 이용자가 주도권을 가집니다.
그래서 스마트폰 시장의 핵심 경쟁 포인트는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의 확보이고, 그래서 너도나도 앱스토어를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플랫폼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간 운영체제 개발에 투자를 안 한 것은 아닙니다만, 하드웨어 오리엔티드 회사라서 소프트웨어를 제대로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최근의 세계시장 흐름이 스마트폰 디바이스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불안감이 증폭된 나머지, 제트와 같은 폰을 출시한 거 같습니다.
플랫폼이 없고 소프트웨어가 안 되니, 삼성이 강점을 가진 하드웨어 기술을 집약한 폰을 만들어 낸 것이죠. 그런데 몸은 무지 좋은데 머리가 나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스마트폰 위주로 세계시장이 흘러가는 시점에서 명백한 역행입니다. 측은한 몸부림입니다.
향후 모바일 산업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취해야 할 전략은 크게 두 가지 중 하나가 될 거 같습니다.
1. 인수합병을 통해 스마트폰 플랫폼을 확보하여 제대로 전쟁을 하든가,
2. 대만의 HTC처럼 화이트박스 업체가 되어 하드웨어만 열심히 생산하든가,
중장기적으로 스마트폰 시장이 대세라고 가정을 한다면(미래의 일이므로 100% 확신할 수는 없는 법이죠), 노키아조차 현재의 지위를 지킬 지 의문이고, 모토롤라는 이미 침체되어 가고 있고,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RIM, HTC 등이 주목할만한 선수들입니다.
스마트폰을 접한 이용자들의 눈높이가 많이 높아졌고 또한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일반폰을 이렇게 저렇게 포장하여 버티는 삼성의 전략은 장기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실망감만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전화기 이상의 역할을 못하는, 확장성 없는 일반폰을 반대합니다. 그것도 가격이 무지 비싼 일반폰이라니요! 이제 일반폰은 가격에 민감한 이용자층을 대상으로 한 저가폰일 경우에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저가폰은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으니까요.
제대로 스마트폰을 써보십시오. 스마트폰을 써보면, 스마트폰이 아닌 일반폰을 다신 사용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스마트폰 보급율이 겨우 1%에 불과한 한국에서 이런 저의 주장이 폭넓은 공감을 얻기는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주장합니다. (관련 글:
ZDNET,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미래가 불투명한 세가지 이유)
그리고 제트가 실망스러운 상황에서 더 충격적인 사실은, 이런 제트조차 한국 이용자들은 만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관련 기사:
연합뉴스, '삼성 제트' 국내서 못 보는 이유는)
국내 이통사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끝까지 버티려는 그들의 노력에, 언제나, 새삼, 당혹감을 느낍니다. 그런 이통사들의 노력 덕분에 국내 모바일 이용자들은 음성통화만 열심히 이용하고 가끔 버튼 잘못 눌러 비싼 데이터통신료를 내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제트가 어떻게 될 지 지켜봅시다. 제트의 실패 또는 성공에 따라, 스마트폰 대세론이 더 힘을 받든가 좀 힘이 빠지든가 그럴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