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계시(?)를 받은 업체, 오라클의 썬 인수

얼마 전 IBM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이하 썬)를 인수하기 위해 논의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 의아하게 생각했습니다. 썬이 갖고 있는 자산 중 자바를 제외하고는 IBM 입장에서 그다지 매력적인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업계에서는 자바도 썬보다 IBM이 보다 잘 활용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죠.
 
그렇지만 IBM으로서는 올해 1분기 매출이 전년 같은 분기와 비교하여 11%나 감소한 상황이고 서버, 스토리지, 소프트웨어 등 모든 부문에서 실적 부진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묘책이 필요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마치 HP의 컴팩 합병처럼 사업이 많이 겹쳐서, 나쁘다고 보기는 힘들어도 그리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수는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IBM의 썬 인수 협상이 결렬된 직후, 4월 20일 오라클이 썬을 74억 달러에 인수를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썬이 두 업체 모두와 은밀히 협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오라클의 썬 인수는 IBM이 썬을 인수하는 것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종종 IT 세미나에서 오라클이 썬을 인수하는 것은 상당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재 오라클은 데이터베이스 업계에서 세계 최고의 강자이고, 애플리케이션 서버 등 미들웨어 분야에서도 상당한 점유율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ERP를 위주로 한 애플리케이션 분야에서도 강세인데, 이미 ERP업체인 PeopleSoft를 인수한 바 있고, 유명 CRM 업체인 Siebel, 선도적인 프로젝트 관리 솔루션 업체인 Primavera를 인수해서 강력한 애플리케이션 진용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근 몇 년간 주목할만한 인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2005년 1월, PeopleSoft 인수
2006년 1월, Siebel Systems 인수
2007년 3월, Hyperion Solutions 인수
2008년 1월, BEA Systems 인수
2008년 10월, Primavera Systems 인수
2009년 4월, Sun Microsystems 인수

 [오라클 본사 전경 (출처: 위키피디아)]
 
오라클은 이미 데이터베이스, 미들웨어, 애플리케이션을 전반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에다가 썬의 하드웨어 기술, 운영체계(OS), 스토리지 제품군, 자바의 소유권까지 확보하게 되었으니, 오라클은 이제 하드웨어, 운영체계, 데이터베이스, 미들웨어, 애플리케이션, 개발도구 등을 모두 갖춘(그것도 거의 최고의 제품들로) 토털 솔루션 업체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현재 수준에서 이에 경쟁할 수 있는 업체는 IBM 정도입니다. 단지 소프트웨어 쪽만 본다면 마이크로소프트도 어느 정도 경쟁 업체이지만, 토털 솔루션이라는 측면에선 마이크로소프트가 오히려 밀리는 상황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번 인수에 대해 스티브발머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썬이 IBM과 인수를 논의하다가 결렬된 직후 곧바로 오라클의 썬 인수 소식이 나와서 저도 놀랐습니다. 역시 인수 논의는 동시에 두 업체와 진행해야 몸값을 확실히 올릴 수 있음이 이번에 다시 한번 증명된 것이죠.
 
인수 논의는 동시에 두 업체와. 기억하십시오. ^^
 
1977년에 창업된 오라클(Oracle)의 회사명은 창업자인 래리 앨리슨이 창업 전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명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신의 계시’라는 뜻의 오라클. 회사 이름 하나는 멋들어지게 잘 지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 4위의 갑부이자 바람둥이이자 실리콘밸리의 악동으로 알려진 래리 엘리슨은 같은 악동 계열인 스콧 맥닐리의 썬을 인수함으로써 IBM과 마이크로소프트와 완전히 맞짱을 뜰 수 있는 위치로 자신의 회사를 올려 놓았습니다.
 
이에 대해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는 과연 어떤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몹시 궁금한데, 두 업체 모두 예상치 못하게 오라클로부터 한방 먹은 상태라서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오라클과 직접적인 경쟁업체이면서 자바를 밀고 있는 IBM으로서는 이번 오라클의 썬 인수가 상당히 껄끄러울 수 밖에 없으며, 엔터프라이즈에서의 입지가 불안한 마이크로소프트로서도 오라클의 썬 인수가 상당히 충격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음은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점차 분위기가 침체되고 있는 IBM은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인데 자잘한 인수로는 국면 전환이 힘들 것으로 보이며, 예컨대 HP와의 합병 등 시장을 놀래 킬만한 액션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오라클의 자바는 썬의 자바와는 달리 오라클이 강점을 가진 데이터베이스, 애플리케이션 제품과의 강력한 결합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일단 이와 관련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예컨대, (플래시를 가진) 어도비 인수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명백한 어도비 카피인) 익스프레스 제품군을 독자적으로 만들 게 아니라 매크로미디어를 인수해서 .NET 제품군에 통합을 했어야 하죠. 그런데 어도비가 매크로미디어를 인수해버려서 그럴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어려운 길을 가고 있죠. 그렇듯 신규 시장의 진출, 기업의 성장에 있어 인수합병을 잘 활용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조만간 IBM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입장 표명 내지는 새로운 전략의 발표가 있을 듯 한데 그때 엔터프라이즈 IT 업계의 향방에 대해 다시 한번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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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데브 2009-04-23 20:13:53     답글 삭제
ㅎㅎ..저도 회사에서 이 뉴스를 접하곤 위에 PL한테 되물어봤었죠..
정말 쇼킹한 뉴스였습니다.
아범은....과연 어디랑 합병해야 시너지가 날까요..^^;
일단 HP랑은 겹치는 사업영역이 너무 크고, 사실 이제 매출만으론 HP가 아범을 먹을 수 있을지도..명색이 PC분야 1등이니.
그러나 저러나 최근 1~2년간 인수합병뉴스중에 가장 쇼킹하네요.
바비 2009-04-23 23:12:24     삭제
그렇죠. IBM과 HP의 경우 사업 영역이 많이 겹치므로 제품상 시너지보다는, 회사 규모를 키워서 경쟁자와 격차를 벌이는 의도로 합병을 검토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황당한 얘기일 수 있으나, 기업이란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생물체이니 알 수 없는 법이죠.

앞으로 오라클이 얼마나 잘 해나가는가에 따라, 경쟁 업체들의 행보 또한 많이 달라질 거 같네요.

김동휘 2009-04-30 08:52:29     답글 삭제
소식을 접하고 갑자기 오행(목,화,토,금,수)에 대해서 뜬금없이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것이 상극(相剋)이고 상생(相生)일지는 두고 봐야겠군요.
위 주제와는 크게 상관은 없지만, 예전에 같이 일하던 분이 이제는 회사를 만드는 목적이 자신의 이상 추구나 사회 기여보다는 큰 회사에 팔아먹는 게 주목적이 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원체 아는 것이 없는 저로서는 남의 집 불구경하듯 생활하고 있다니.. 저도 흐름을 읽을 수 있게 관심 좀 갖고 살아야겠습니다.
바비 2009-05-07 21:56:55     삭제
자신의 회사를 팔거나 합병시키는 것을 창업의 목표로 삼는 것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죠.

christian louboutin wedding shoes 2011-04-18 10:42:58     답글 삭제
지금 상황에서는 황당한 얘기일 수 있으나, 기업이란 생존을 위해 진화하는 생물체이니 알 수 없는 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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