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하나로텔레콤의 고객정보 장사, 그리고 집단소송제의 필요성

최근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에 따르면, KT와 하나로텔레콤이 2004년부터 다른 회사에 고객정보를 팔아서 고액을 챙겼다고 합니다. 730만 명의 고객정보를 팔아서 텔레마케팅에 활용하도록 하고 그 수익금을 나누어 가졌다고 하는군요. 경찰의 추산에 따르면, 팔아 넘긴 정보건수가 5천만 건, 관련수익이 13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도용된 정보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3천 여명에 달한다고 하는군요.
 
관련기사: [매일경제] 기업들 도넘은 고객정보 유출
 
저도 휴대폰으로 정말 수많은 텔레마케팅 전화를 받았는데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죠. 회의 중, 중요한 만남 중, 정말 시도때도 없이 걸려오는 “고객님”으로 시작되는 그 전화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기계를 이용해 마구잡이로 전화를 걸어서 사람이 받는 경우에만 응대를 하는 것인지, 걸려온 전화를 받아도 아무 소리가 없더군요. 조금 있다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리며 “고객님”으로 시작되는 멘트. 최근에는 휴대폰 번호가 찍히며 전화가 오는데 받으려고 하면 이내 끊긴 뒤죠. 벨소리가 겨우 1~2번 울린 후 끊기니까요. 궁금한 마음에 걸어보면 돈 빌려 쓰라는 ARS 기계 멘트. 다들 이런 사연 엄청나게 많을 겁니다. 하루에 수십번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더군요.
 
이번 KT와 하나로텔레콤 사건과 관련된 기사를 보면, 시민단체가 집단소송을 제기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관련기사: [연합뉴스] 고객정보 불법 유출 KTㆍ하나로텔에 집단 소송

그런데 기사에서 말하는 집단소송은 제도로의 집단소송은 아닙니다. 기사의 내용은 피해자들이 함께 모여서 소송을 제기한다는 뜻일 뿐이죠. 소송에서 이기면 소송에 참여한 사람들만 보상을 받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시행 중인 집단소송제(集團訴訟制, class action)는 피해자 일부가 승소할 경우 그 판결의 효력이 피해자 전체에게 미칩니다. 미국에서는 1938년부터 집단소송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운용 방식에 차이는 있습니다만 많은 선진국들이 집단소송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근래에 증권, 분식회계 등 일부 분야에만 도입이 되었고, 아직 전분야에 걸쳐 시행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소비자 집단소송제
 
최근 미국에서 대한항공이 운임 담합으로 인해 3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 받고, 소비자들로부터 집단소송이 제기되었다고 합니다. 소송에서 질 경우 이미 납부하기로 한 벌금 외에 엄청난 배상을 하게 될 것입니다.
 
관련기사: [동아일보] 美소비자, 대한항공 상대 집단소송
 
과거에도 담배 소송, 석면 소송, 유방성형 소송 등 유명한 사례들이 많죠. 다수의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였을 때 소비자 개개인이 개별적으로 손해 배상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간과 비용의 문제도 있거니와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기는 것이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집단소송제가 필요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집단소송을 현재 할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3월부터 집단분쟁조정제도가 시행되었다는 점입니다. 
   
  집단분쟁조정제도는 지방자치단체나 소비자원, 소비자단체 등이 같은 제품이나 서비스로 피해를 본 소비자 50명 이상을 모아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기업이 조정안에 대해 합의를 하지 않을 경우, 개별 소비자가 소송을 통해 해결을 해야 하며 이 경우 소송을 하지 않은 소비자는 보상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 기업들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많이 부족하고 한국 소비자들이 봉이 되고 있는 현 상황을 볼 때, 집단소송제도는 전 분야에 걸쳐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이런 일까지 있었는데 소비자 피해를 어떻게 보상받아야 할 까요? 현재의 상황에서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어떤 한 소비자가 소송을 해서 이길 경우, 그 금액도 작을 뿐만 아니라 단지 소송을 낸 소비자만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히 소액 피해의 경우 비용과 시간 문제 때문에 개별 소비자가 소송을 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껏해야 전화 항의나 환불 요청 밖에는 없습니다. 그것도 기업이 응해야 가능한 것이고요.
 
물론 한국에서도 소비자 피해 구제는 계속 강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집단분쟁조정제도와 함께, 내년 1월부터는 소비자단체소송제도가 시행됩니다. 
   
  소비자단체소송제도는 일정한 요건을 갖춘 단체가 소비자의 생명, 신체, 재산상 권익을 침해하는 사업자의 위법 행위에 대해 금지 및 중지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하지만 금전적인 배상까지 청구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금전적인 배상은 (기업이 합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집단분쟁제도를 이용하거나 소비자 개별 소송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그나마 아무 것도 없었던 상황에서 최근에 이런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당히 부족합니다. 예컨대, KT와 하나로텔레콤의 고객정보 장사에 대해 소비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결국 이런 일이 반복된다고 할 지라도 이들 업체들은 그저 소액의 벌금만 지불하면 그뿐입니다.
 
소비자의 권익을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제약을 최소화한 집단소송제가 전면적으로 확대 시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작용이 일부 있더라도, 기업의 투명성/신뢰성 증대와 소비자의 혜택을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적 이익이 클 것입니다.
 
동일한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미국 소비자들은 강력한 보호를 받고 한국 소비자들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입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들이 보호받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도 계속 비닐하우스에서 보호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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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zekil 2007-08-15 23:56:18     답글 삭제
마지막의 굵은 글씨 정말 마음에 와닿습니다.. 한국은 너무 기업 중심이에요..
바비 2007-08-16 01:25:13     삭제
기업이 장기적으로 잘 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관점에서 이것은 기업들을 위한 주장이기도 합니다. ^^

idea 2007-08-16 09:24:52     답글 삭제
KT,하나로텔레콤,파워콤등의 정보유출은 본사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업체들은 회원모집 대리점을 어떤 형태로든 운영하게 되는데요.. 이들은 본사의 전산망 이외의 별도 전산망을 구축해서 개인정보를 관리하고 있는 곳이 많습니다. 전산망이 아니더라도 엑셀파일등으로 관리를 하겠죠.. 이 정보는 정말 누구에게나 쉽게 전달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죠. 여러 단계의 대리점망 때문에 개인정보 유출은 위의 자료보다 훨씬 더 많이 이루어졌을 겁니다.
바비 2007-08-16 13:14:09     삭제
네, 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통로가 정말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소중한 고객정보는 정말 잘 관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의 자산이 아닐까요?

image 2007-08-16 09:57:47     답글 삭제
이런걸 보면 한국은 정말 '기업하기 좋은나라'인 것 같은데, 왜 언론에서는 한국이 기업하기 좋은나라가 아니라고 계속 그럴까요?
바비 2007-08-16 13:15:13     삭제
오타인가요? "왜 언론에서는 한국이 기업하기 나쁜 나라라고 그럴까요?"가 맞죠?

반기업정서가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그것은 기업들이 자초한 것입니다. 투명하고 신뢰성 있게 행동하였다면 반기업정서가 생겼을리 만무하죠.

고어핀드 2007-08-16 10:26:59     답글 삭제
그나마 저 증권에 대한 집단소송제조차 4년 전 도입될 때는 반기업적 정책이니, 기업죽이기니 하는 소리가 나왔었죠. 정말 마지막 문장에 동감입니다.
바비 2007-08-16 13:15:40     삭제
점점 더 확대 개방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 아닐까요~

한민희 2007-08-16 16:42:11     답글 삭제
비밀 댓글이 등록되었습니다.
바비 2007-08-17 17:26:37     삭제
네, 출처만 명확히 표기된다면 소개하셔도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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