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경과 블로고스피어

의사환경(擬似環境, pseudo-environment)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196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바 있는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n)이 체계화한 말로 매스커뮤니케이션과 사회과학에 있어서 여론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개념이죠.

그의 예를 인용하면 이런 식입니다. 고립돼 있는 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오는 배편을 통해 신문을 접하고 세상 소식을 알게 되는 방식이었는데요. 이들의 국적은 영국, 프랑스, 독일로 서로 그 섬 안에서는 별 다른 문제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 편이 늦어지면서 2달만에 도착한 신문에는 세계 1차 대전 소식이 실려 있었죠.

그들은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며 서로 현실 세계에서 문제 없이 지내던 상황에 일대 반전이 시작됩니다. 그들은 지난 번 신문에 나왔던 소송 결과에 대한 기대로 이 번 신문을 봤는데 말이죠. 그들의 관심사는 변하고 갑자기 현실 속 인식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들은 신문에 의해 의사환경 속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되는데 리프먼은 이런 모습이 '여론'이라고 봤던 겁니다. 잘 짜여진 매트릭스 속의 동요쯤으로 표현해야 겠군요.

리프먼은 그래서 여론이 얼마나 비합리적이며 집단적 여론 조작이 얼마나 쉽게 가능한지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보여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사소한 개인 관심사와 대중적인 이슈 사이
어찌보면 웹 2.0에서 말하는 '집단지성'과 리프먼이 설명하는 '여론'은 매우 다른 꼭지점에 서 있다고 봅니다. 웹 2.0은 창의적인 개별 지성의 집단적 가치 실현에 무게를 두었다면, 리프먼은 매스미디어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대중과 그로 부터 비롯된 여론의 위험한 함정을 경고한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요즘 블로고스피어(블로그 세상)는 몇 가지 주제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습니다. 애드센스, 저작권, 구글, 네이버, 블로그, 올블로그 등등이죠. 이러한 주제 집중에 대한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 의견)가 다시 여론화 되는 경향도 나옵니다. 찻잔 속에서 블로거들은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죠.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에서는 메인 화면과 뉴스 섹션에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배치해 놓고 사람들의 관심사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인기 검색어는 단순히 사람들의 관심사를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낳게 됩니다. 온라인 뉴스는 이 실시간 검색어를 만들어내거나 다시 재해석하면서 인기 검색어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해줍니다. 세상은 인기 검색어 안에 갇히게 됩니다.

좀 더 큰 이야기를 해보죠. 신문과 방송은 최근 북핵과 6자 회담, 그리고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검증 논란, 보수와 진보, 그리고 그 안에서의 갑론을박을 중계해줍니다. 게이트 키핑을 거쳐 걸러진 정보는 아젠다 세팅에 의해 배열되고 해석 저널리즘에 의해 간단한 사실과 누군가의 발언은 확대 해석되며 마치 누구나 알아야 하는 중차대한 사안으로 이야기 되어집니다.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두가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오류의 덫에 걸려 있습니다.

블로그는 집단지성의 발현인가, 의사환경 속 여론에 불과한가
어떻습니다. 모습이 모두 비슷하지 않습니까. 메시지란 것이 어떤 매체에 의해 전달되느냐에 따라, 또는 어떤 수용자에게 도달되느냐에 따라 수용자들은 반응을 하는데 있어서 비판적인 수용을 하지 않으면 '의사환경'이 마치 현실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매스미디어의 메시지와 포털이 집단적 의사환경을 구축해왔다면 이제 블로그들은 그 의사환경을 조각내기 시작해 단편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의사환경 속 메시지는 내가 체험하고 내가 느끼는 현실환경과 일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블로거들은 매스미디어가 자주 저지르는 (의도적인)실수인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주의해야 합니다.

블로그가 매스 미디어일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나치게 자기 주관적인 글도 문제지만 마치 세상사를 내가 생각한대로 재단해줄테니 너희는 듣기나 하라는 식의 태도도 기존 매스미디어가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구축하고 있는 '의사환경'과 다름 아닙니다.

'의사환경'을 구축하고 있는 매스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수용자의 대반격. 그것이 블로그의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블로거는 한 분야에 전문가이지만 모든 네티즌은 모든 분야에 전문가다'라는 식의 집단지성이 시사하는 바는 '우매한 대중론'에 대한 통쾌한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스미디어가 '누구나 관심을 갖는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해서 각 개인이 꼭 그 사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개연성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관심 갖는 내용에 대한 활발한 의견 개진과 교류가 적어도 진실과 멀어진 의사환경을 개별 사실에 가깝게 접근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만은 1인 미디어에 대해 매스미디어를 대체하는 대안미디어라고 말하지 않고 다양한 미디어들 속에서 다방면을 보여줄 수 있는 보완미디어라고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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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2007-02-22 11:31:55     답글 삭제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언론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 돋보이시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의사환경의 단편화가 이루어질 수록 사회의 다양성 및 건전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우매한 대중론'에 대한 통쾌한 반전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전제가 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왼쪽이라고 말해도 자신은 오른쪽이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의 수가 늘어야 할 것이고, 타인의 다른 의견을 반박하기 보다는 이해하려 노력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현재 몇몇 주제에 대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면에서 한국 사회가 아직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 환경과 아이들의 성장 환경(특히 인터넷)이 급격히 변하고 있으니, 예상보다 빨리 다양성이 확보되는 시기가 올 수도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보긴 합니다만 쉽지 않은 문제라는 것은 명확하죠. 그런 시기가 빨리 도래해 블로그가 진정한 의미의 보완 미디어로 자리매김하고, 롱테일을 볼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

자그니 2008-06-21 14:09:56     답글 삭제
시간이 좀 지나긴 했지만, 좋은 글은 빛을 발하네요 :) 의사환경에 대해서는 더 공부를 해보겠습니다. 많은 도움 얻고 갑니다-

breitling replica watches 2014-06-13 17:04:20     답글 삭제
거들은 매스미디어가 자주 저지르는 (의도적인)실수인 일반화의 오

Rolex Submariner Replica 2014-07-24 13:53:32     답글 삭제
실수인 일반화의 오류에 대해 주의해야 합니다. 번 신문을 봤는데 말이죠. 그들의 관심사는 변하고 갑자기 현실 속 인식까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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